자유게시판
정당한 화는 없다
요즘 사회는 생존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고 사람들
도 많이 거칠어진 것 같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보다는 재물이나 권세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인간
적 윤리보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시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불만이 많아져 화도 많아진 것 같다.
때로 사람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분개하고 세상을 개선해야 한다
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분노를 정당화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당함에 대한 것이든 부당함에 대한 것이든 분노는 분노이다. 화에
휩싸인 상태에서 하는 생각과 행동들에는 지혜가 부족하기 쉽다. 또한
어떤 부조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노로써 대처한다면 상대방
도 거기에 대해 똑같이 저항하면서 돌고 도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
다.
세상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
러나 그것은 자비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화를 바탕으로 행동
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선업이 아닌 불선업
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런 화 속에서 바른 판단을 하기도 어렵다.
경전에서는 화를 부글부글 끓는 물에 비유한다. 이것은 화가 나 있으
면 마음이 들뜨고 흥분되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상황을 객관적
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면 문제는 더욱 꼬이고 미궁에 빠지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원한은 원한으로 갚아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 마음
속의 분노를 먼저 내려놓고 자비가 가득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고 해야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화를 내려놓으면 마음이 가
라앉아 고요해지기 때문에 지혜롭고 올바른 판단이 가능해진다. 일을
도모하기 전에 항상 화를 버리고 고요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화의 다양한 양상
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잘 알고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많은 화에 휩쓸리
며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보통 그것이 화인지도 모른 채 습관
적으로 화를 내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습관화된 화는 스
스로 자각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화는 빨리 알아차리면 적은 노력으로
도 치유할 수 있지만 모르고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매우 거친 형태의 화 중 대표적인 것이 분노이다. 물리적이거나 신체
적은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적인 폭력도 마음속의 분노가 행동이
나 말로 표출된 것이다. 분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거나 호흡이
거칠어지는 등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화라고
알기가 쉽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화가 바로 스
트레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외랭가 스트레스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아간다. 스트레스는 자꾸
쌓이다 보면 몸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요즘에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스트레스 또한 화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누군가가 마음에 거슬릴 때, 혹은
날씨가 춥거나 더울 때 쉽게 짜증을 낸다. 가벼운 화이기는 하지만 이
런 짜증도 화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알아야 한다.
남이 잘되었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기하고 싫
어하는 질투도 화이고,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지 않고 자기만 거머
쥐고 있으려는 인색도 화이다. 질투가 타인의 성공을 싫어하는 심리
현상이라면 인색은 자기의 성공을 남과 나누지 않으려 하는 심리현상
이다. 그래서 인색은 보시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하면 보시를 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할 수 있는 것부터 보시하는 사람이 나중에 성
공해서도 보시를 할 수 있다. 일이 잘 되면 보시하겠다고 보시를 미루
는 사람들은 나중에는 그 마음이 말라 버려 보시를 할 수 없게 된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여러 스승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들에게 가
르쳐 주지 않고 꼭 쥐고 있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가르침을 전부 전수해 버리면 제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
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부처님께서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숨김없이 설하셨고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깨달음의 네 과위
중 첫 단계인 수다원만 되어도 질투와 인색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목숨을 바쳐 익힌 법들이라 하더라도 묻는 것에 대해서는 숨김
없이 다 가르쳐 주고 대답해 준다. 질투나 인색도 화의 한 형태라는 것
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화의 또 다른 형태는 후회이다. 후회는 해야 할 선행을 하지 않았을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불선행을 했을 때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길에서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쳤을 때나 사소한 일에 화를 버럭 내고 돌아왔을 때 후회가 일어
날 수 있다.
물론 과거의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선한 마음이다. 그
러나 많은 경우에 잘못한 일을 참회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가 왜 그랬을까.','나는 못난 인간이야'하고 자책하면서 지난 일을 계
속해서 떠올리고 자신을 학대한다.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화이다.
이처럼 과거를 붙들고 싫어하는 감정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것은 자
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또한 마음에 깊
은 상처로 남아 정신적인 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후회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을 인정하고 참회를 하는 것이 좋다. 잘못된 일
이 왜 발생했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숙고하여 지혜를 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불교의 독특한 접근 방식 중의 하나가 그릇된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
이지만 그 행위에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불교에서
는 원래 잘못된 인간이 있거나 근본적으로 나쁜 마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마음도 조건의 결합에 의해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을 뿐이다.
예를 들면 눈과 형상이 접촉할 대 눈의식(안식)이 일어나는 것처럼,
감각 기능과 감각 대상의 접촉에 의해서 마음이 일어난다고 본다. 다
시 말하면 눈, 귀, 코, 혀, 몸, 마노(마음)와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마음의 대상)의 접촉에 의해서 눈의식, 귀의식, 코의식, 혀의식, 몸
의식, 마노의식이 일어난다고 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번뇌 또한
해로운 심리 현상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은 조건에 의해서 발생하는
현상이지 변하지 않는 실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번뇌도
특정한 조건 아래서 발생한 현상으로 실체가 없고 공하다는 것을 이해
하면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천수경』에도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는 구절이 나온다.
죄는 원래 스스로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따라 일어난다는
뜻이다. 어떤 조건하에서 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 뿐 죄가 하나의 실
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체로서가 아닌
당시 상황에서 어리석음에 기인한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현상이라
고 바라보면 극복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몸을 통해 일어나는 통증은 누구에게난 일어나며 필요한 것이지만,
그 통증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 또한 화의 범주에 들
어간다. 『쌍윳따 니까야』「화살경」에 보면 처음 육체적 고통이 일
어나는 것을 첫 번째 화살로 비유하고,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적 불
만족과 함께 화가 일어나는 것을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에 비유한다.
첫 번째 화살에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고 연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에 맞지는 말아야 한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치과에서 치료받을 때보다
치료받기 전에 미리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더 괴로워하지 않는
가? 몸을 통해 일어나는 통증은 피할 수 없지만 통증을 그대로 지켜
보면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 고통이 그리 심하지 않다. 통증을 싫
어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더 큰 괴로움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
다.
사실 우리 삶에서 이런 일들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몸이 무겁
다, 피곤하다, 힘들다 하는 식으로 미세한 짜증들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도 모두 다 화를 바탕으로 한 생각들이다. 몸의 불편
한 상태에 반응해서 싫어하는 마음인 화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몸의 불
편한 상태를 그대로 알아차리고 지켜보면서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것
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슬픔과 절망도 화이다. 많은 분들이 불교를 인생의 행복을
무시하는 염세적이고 허무적인 종교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염세적이
라는 말 자체가 세상을 싫어하는 것으로 화의 한 형태이다.
허무하다는 것도 희망이 없고 절망에 빠지는 상태로 이것 또한 화이
다. 우리는 보통 화와 탐욕에 물들어서 마음대로 안 되면 싫어하며 우
울해 하고 마음대로 되면 좋아하고 흥분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바른 정신 상태는 온전히 깨어 있어서 또렷하고 활
발발하며 지혜가 작용하는 적극적인 상태이다. 화나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만이 없어지는 만족스러운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염세적이고 허무적인 생각이 나오겠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따분하고 재미없다거나 심심하고 무료하다는
것도 화에 포함된다. 현재 상태에 불만족을 느끼는 것이기 대문이다.
수행을 하면 지금 이 순간 자기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아
차리느라 따분할 겨를이 없다. 당장 이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분함도 미세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불만족이
함께하는 것이므로 화라고 이해해야 한다.
우울함도 화이다. 그리고 대인공포증이나 폐쇄공포증 등 여러 가지
공포증도 정신적 불만족이 쌓여서 병적인 상태로 된 것으로 볼 수 있
다. 어떤 사람이 고장 난 승강기 안에 몇 시간 동안 갇혔다가 나왔다.
이것을 우연히 승상기가 고장나서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면 하나으 ㅣ
사건으로 그야 지나갈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복
해서 떠올리면 승강기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서 나중에는 승강
기 근처만 가도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워져 폐쇄공포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울함도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가 누적된 것일 뿐인데 그것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마음이 우울해진다. 우울함이 반
복되다가 어느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병이 되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
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울한 생각이 들면 얼른 밖으로 나가서 산책
이나 운동을 하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주
는 것이 좋다. 우울함이 화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러한 기분에 빠져들
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고 비난하는 것도 화
이다.
이처럼 분노, 스트레스, 짜증, 질투, 인색, 후회, 슬픔, 공포, 절망, 허
무, 따분함, 우울함, 남의 흠 잡기, 몸의 아픔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 등
삶에서 나타날 수 있는 화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돌이켜 보면 우리
는 많은 시간을 짜증내고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 하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화를 일으키지 않고 사는 시간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
도이다.
※ 조계종 출판사/ 화를 버리는 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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