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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팔정도 수행이 그대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불자들의 믿음에는두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깨달아 법계에 계시는 불보살님을 간절하게 믿고 가피를 비는 타력신앙 입니다
하나는 자기안에 누구나 본래 갖추고 있다는 불심을 드러내는 자력 신심 입니다
이두 신앙의 근원은 본래 하나지만 법계에는 깨달은 분들과 깨치지못한 분들이 계시므로
깨치지못한분들은 자연스럽게 이와같은 두가지 형태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한 타력 신앙과는 다름니다
이는 자기안의 본성을개발 해냄과 동시에 불보살님들의 본성에 접근하므로서 서로 소통을 하는것이니까요 이때 수행자는 불성을 체헙케 되겠지요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향하여 간절히 빌때 우리와 관세음보살 간에는 감응 도교가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가 여기에서 구원의 통로가 열림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팔정도 수행이 어떻게 기도가 될수 있나요 팔정도는 법성을 제대로 드려다본 정견의 마음으로 사는자를 부처로 만드는 길 입니다
법성을 깨달으면 왜 부처냐 중생은 아직 법성을 깨닫지 못 햇으므로 마음이 법성을 깨달으면 그 때 부처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 어듸서 어떠한 형태로 있든지 그 마음으로 있기때문에 그 마음을 깨쳐야 부처 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마음을 깨닫고 이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팔정도 아닙니까 이수행은 우리가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부처의 행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실천 행 입니다 일체가 나와 똑 같은 부처임을 아는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부처를 겨냥 해서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자기 소원을 이루며 살어 가는 이 삶이 참기도가 아니고 무엇 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의 모습이 팔정도 이기때문에 팔정도가 기도가 되는 것 입니다
팔정도는 영원한 진리의 길이며 무량수 무량광 나무아미타불의 길 입니다 기도는 마음에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이 형상으로 이뤄져 나오는것 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하게 염하면서 팔정도를 행 한다면 그것이 기도 생활 이요 바른 믿음 입니다
그래서 팔정도 수행이 수행 답게 될려면 기도 수행이 되어야 바른 수행 입니다
그냥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께 기도 하면 다 이뤄 진다고 하면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수행이 되기 쉽습니다
기도를 해도 바른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무엇이 바른 기도냐 정견에 입각한 바른행을 하면서 바른것을 소망 하는것이 바른 기도 입니다
팔정도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수행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가 수행의 의미도 한번 짚고 넘어 가겠습니다
수행 하면 닦을 무엇이 있어서 닦는 수행은 수행이 아닙니다 뭣을 전제하면 그것은 있음에 떨어진 사도 이니까요
진정한 수행은 닦을것이 없는데서 닦는 수행이라야 진정한 수행입니다
닦을것이 없는 수행이란 팔정도 처럼 진리 그자체를 살어가는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는 아직 중생이므로 진리를 닦아야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닦음을 닦을것이 없는 닦음이라 합니다
팔정도는 이러한 진리를 실현하는 닦음이므로 여기에서 항사묘용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수 없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은 생신으로 화현해 오신 화신불이지만 자비 그자체이신 나무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의 간절한 기도에 응해서 지금도 천백억 화현불로 가피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보살님이 아까 말씀드린 관세음보살님 이십니다 앞에서도 말 했지만 기도란 자기 마음에 있는 간절한 소망이 (정정) 부처님을 향할때(반야정견) 그 자리에서 바르게 행하는 행이(정사-정업) 가피를 받아 소망이 이뤄지는것을 말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팔정도에 입각한 간절한 기도가 여기에 해당 하는것 이지요
실제로 나는 팔정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내 생애에 세번의 가피를 받은바 있습니다 (우리카페 팔정도의 생활화 방 "불보살의 신통력과 가피력" 참조)
팔정도에 입각하지 않고도 불보살의 가피는 이와같이 분명 한데 팔정도 생활이 바로 기도가 되면 거기서 오는 가피는 어떠하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염송 하면서 팔정도행을 하는 불자에게 쏟는 부처님의 가피는 훨씬 각별 할것 입니다
우리불자들의 믿음에는두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깨달아 법계에 계시는 불보살님을 간절하게 믿고 가피를 비는 타력신앙 입니다
하나는 자기안에 누구나 본래 갖추고 있다는 불심을 드러내는 자력 신심 입니다
이두 신앙의 근원은 본래 하나지만 법계에는 깨달은 분들과 깨치지못한 분들이 계시므로
깨치지못한분들은 자연스럽게 이와같은 두가지 형태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한 타력 신앙과는 다름니다
이는 자기안의 본성을개발 해냄과 동시에 불보살님들의 본성에 접근하므로서 서로 소통을 하는것이니까요 이때 수행자는 불성을 체헙케 되겠지요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향하여 간절히 빌때 우리와 관세음보살 간에는 감응 도교가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가 여기에서 구원의 통로가 열림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팔정도 수행이 어떻게 기도가 될수 있나요 팔정도는 법성을 제대로 드려다본 정견의 마음으로 사는자를 부처로 만드는 길 입니다
법성을 깨달으면 왜 부처냐 중생은 아직 법성을 깨닫지 못 햇으므로 마음이 법성을 깨달으면 그 때 부처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 어듸서 어떠한 형태로 있든지 그 마음으로 있기때문에 그 마음을 깨쳐야 부처 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마음을 깨닫고 이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팔정도 아닙니까 이수행은 우리가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부처의 행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실천 행 입니다 일체가 나와 똑 같은 부처임을 아는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부처를 겨냥 해서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자기 소원을 이루며 살어 가는 이 삶이 참기도가 아니고 무엇 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의 모습이 팔정도 이기때문에 팔정도가 기도가 되는 것 입니다
팔정도는 영원한 진리의 길이며 무량수 무량광 나무아미타불의 길 입니다 기도는 마음에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이 형상으로 이뤄져 나오는것 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하게 염하면서 팔정도를 행 한다면 그것이 기도 생활 이요 바른 믿음 입니다
그래서 팔정도 수행이 수행 답게 될려면 기도 수행이 되어야 바른 수행 입니다
그냥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께 기도 하면 다 이뤄 진다고 하면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수행이 되기 쉽습니다
기도를 해도 바른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무엇이 바른 기도냐 정견에 입각한 바른행을 하면서 바른것을 소망 하는것이 바른 기도 입니다
팔정도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수행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가 수행의 의미도 한번 짚고 넘어 가겠습니다
수행 하면 닦을 무엇이 있어서 닦는 수행은 수행이 아닙니다 뭣을 전제하면 그것은 있음에 떨어진 사도 이니까요
진정한 수행은 닦을것이 없는데서 닦는 수행이라야 진정한 수행입니다
닦을것이 없는 수행이란 팔정도 처럼 진리 그자체를 살어가는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는 아직 중생이므로 진리를 닦아야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닦음을 닦을것이 없는 닦음이라 합니다
팔정도는 이러한 진리를 실현하는 닦음이므로 여기에서 항사묘용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수 없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은 생신으로 화현해 오신 화신불이지만 자비 그자체이신 나무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의 간절한 기도에 응해서 지금도 천백억 화현불로 가피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보살님이 아까 말씀드린 관세음보살님 이십니다 앞에서도 말 했지만 기도란 자기 마음에 있는 간절한 소망이 (정정) 부처님을 향할때(반야정견) 그 자리에서 바르게 행하는 행이(정사-정업) 가피를 받아 소망이 이뤄지는것을 말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팔정도에 입각한 간절한 기도가 여기에 해당 하는것 이지요
실제로 나는 팔정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내 생애에 세번의 가피를 받은바 있습니다 (우리카페 팔정도의 생활화 방 "불보살의 신통력과 가피력" 참조)
팔정도에 입각하지 않고도 불보살의 가피는 이와같이 분명 한데 팔정도 생활이 바로 기도가 되면 거기서 오는 가피는 어떠하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염송 하면서 팔정도행을 하는 불자에게 쏟는 부처님의 가피는 훨씬 각별 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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