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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샘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8.0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988
내용


깊은 샘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어느 날 한 사문이 가섭불의『유교경遺敎經』을 독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경소리가 매우 슬프고 애달픔이 담겨 있어 출가한 것에 후회하는 듯 해보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그에게 물었다.
너는 옛날 세속에 살 때, 어떤 일을 하였는가?
저는 거문고 타기를 좋아 했습니다
거문고를 타기 전에 거문고 줄을 느슨하게 늦추면 어떠하던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거문고 줄을 팽팽하게 꽉 조이면 어떠하던가?
소리가 끊어 집니다
그러면 줄을 느슨하게 늦추지도 않고 팽팽하게 조이지 않는 그 중간에다 알맞게 조절하면 소리가 어떠하던가?

모든 소리가 (조화로이) 두루 고르게 납니다.
수행자가 道를 닦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마음을 만약 고르고 알맞게 한다면 道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道에 대하여 너무 조급하게 마음을 쓴다면 곧 몸이 피로할 것이요, 그 몸이 피로하면 마음까지 괴롭게 된다. 또 그 마음이 괴로우면 수행도 퇴보할 것이요, 수행이 퇴보한다면 반드시 죄업만 더해 갈 것이다. 그러니 오직 몸과 마음을 청정하고 편안히 하다면 道를 잃지 않을 것이다. 『42장경四十二章經』,「제 34장」

위의 내용은 불교의 중심교리라고 할 수 있는 중도中道사상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아래에서 깨달으신 뒤,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셨던 내용이기도 하며 곧 정도正道사상인 것이다. 불교의 대표적인 사상인 중도에 대해 필자는 3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보았다.

첫째, 고락의 극단을 피한 身心의 균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성불하기 이전, 6년간의 고행으로 몸이 극도로 핍박해졌다. 이에 부처님께서 ‘내 이 몸이 살아있는 동안 해탈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지나친 고행으로 인해 내 몸이 죽은 뒤에 生天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하시고 네란자라강가(尼連禪河)에서 목욕을 하고 수자타여인이 바친 우유죽을 드셨다. 당시 수행자들은 육체에 고행을 가하여 生天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이런 행위를 본 제자들은 ‘부처님이 타락했다’며 부처님을 떠났다.

위의 부처님의 수행처럼 오롯이 마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육신의 건강함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곧 육신의 건강을 통해 마음의 수행이 익어가고, 수행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해야 육신도 건강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육체와 정신의 올바른 균형은 바로 중도사상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부처님께서는 보리수아래에서 3· 7일 동안 깊은 삼매에 드신 뒤, 12월 8일 새벽녘에 깨달으셨다. 정각을 이룬 뒤, 교진여 등 5비구에게 처음으로 설한 가르침도 중도설과 사성제이다. 부처님께서 이르신 중도에 대해 『중아함경』에 잘 전하고 있다.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행은 욕락의 생활에 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올바른 깨달음의 길은 고행이나 욕락의 극단
을 피하고 心身의 조화를 얻는 中道의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면 안된다.’


두번째, 수행과 信心의 중도이다.
『42장경』 뿐만 아니라, 중도설은 여러 경전에 언급되어 있다. 『잡아함경』에도 비구 소냐가 수행에 진척이 없어 괴로워하자 "거문고 조율을 알맞게 조절하면 좋은 음이 나는 것처럼, 수행도 마찬가지다. 너무 지나치게 몸을 핍박하여 수행해서도 안되며 그렇다고 수행을 너무 게을리 해서도 아니 되느니라. 중도를 취해야 한다"라고 타이르셨다.

또한 천안제일 아나율존자는 처음에 수행을 게을리해서 부처님께 꾸중을 들었다. 이에 아나율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잠도 자지 않고 수행에 몰두한 결과 눈이 멀게 되었다. 그 후 천안天眼을 얻었는데, 이때에도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설하셨다.

소냐나 아나율만큼의 수행은 아니더라도, 삶과 수행을 여일如一하게 이끌어감이 곧 중도의 실천이건만 중생들은 이 점을 놓치고 만다. 필자도 그 점에 대해 절감한다. 조금 컨디션이 좋으면 공부하고 기도를 한꺼번에 몰아서 한다. 그 뒤 몸이 피로하면 결국 이전에 열심히 했던 것까지 말 그대로 다 까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까지 편치 않다.

일반 재가 불자님들의 수행과 신심도 그러하다. 사찰에 열심히 다니다, 주위 도반들이나 스님들께 조금 실망했다고 해서 불교를 믿지 않거나 신심이 퇴보하는 불자님들이 더러 있다. 또한 자녀 입시기도가 있을 때는 열심히 기도하다가 입시가 끝나면, 사찰에 오는 발걸음이 뜸하다.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깊은 산골의 샘물은 늘 솟아나듯이 신심도 기도도 어떤 일에 굴하지 않고 여일如一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이 일어나도 부처님께 바치고 끊임없는 발심으로 정도正道를 실천해야 하리라 싶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람도 없는 여일한 신심과 기도는 곧 중도의 실천인 것이다.


셋째,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어떠한 경계가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불자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열반경』에 '흑암녀 공덕천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인즉, 한 장자의 집에 아리따운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찾아왔다. 그 여인은 장자에게 “나는 공덕천인데 당신 집안에 좋은 일만 갖다 줍니다”라고 하자, 장자는 여인에게 들어오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뒤에 검은 옷을 입고 못생긴 여인이 따라 들어온다.

장자가 누구냐고 묻자, 여인은 “나는 흑암녀로써 공덕천과 늘 붙어다니는 자매입니다. 당신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나 불행만 갖다 줍니다.”라고 한다. 그러자 장자는 두 여인 모두 들이지 않았다고 하는 일화이다.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듯이, 중생의 삶에 좋은 일에는 좋지 못한 일이 따를 수 있고, 또한 안좋은 일 뒤에는 좋은 일이 오기 마련이다. 즉 우리의 삶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거기에 동요 받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전에서는 8風*에 흔들리지 않을 것을 경계하는 내용이 전하고 있다. 누군가 당신을 칭찬하더라도 우쭐하지 말고 비방하더라도 의기소침하지 말며,‘삶이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도 진정한 중도행이 아닐까 싶다.


주)
* 8風은 利衰毁譽稱譏苦樂을 말한다.
즉 利는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 생기는 것, 衰는 사업이나 가정에서 좋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 毁는 헐뜯고 비방하는 것, 譽는 칭찬해주고 계속 추켜 세워주는 것, 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칭찬하는 것, 譏는 꾸짖고 욕하는 것으로 사람을 우롱하거나 언어폭력, 苦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의 고뇌, 樂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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