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불자의 규범

계(戒)는 법어로 실라하고 하며 율(律)은 범어로 비나야(毘奈耶)라고 한다. 불교도의 생활 윤리, 또는 삶과 수행의 규범이다. 계율은 일반적으로 승가를 구성하는 사부 대중이 준수해야할 삶의 방식과 규율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함께 통칭한다.

그러나 계와 율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구분이 있는데, 계는 불교의 수도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지켜야할 도덕적 수행이며 율은 승가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타율적인 행위 규범을 뜻한다. 따라서 계는 주체적이며 자율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수 있고 율은 타율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율의 조항을 위반했을 때에는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에는 그같은 벌칙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중도는 어디까지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법에 근거를 둔 생활방식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러한 생활 방식을 계(戒)라고 한다.
그러나 교단이 커지고 수행자가 많아지게 되면서 수행자 개개인의 자각만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그 중에는 출가자로서의 훈련이 부족한 사람이나 전혀 자각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수행자로서 허용될수 없는 행위가 교단에 등장하게 되고, 그런 비행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은 그것을 규제히여 금지조항을 만드셨다. 이것을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율은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고서 일시에 율장으로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제정한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렇게 수행자로서 개인적으로나 교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할 행위 규범을 율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율은 경전의 결집 과정을 통해 계속 전승되어 왔고 출가자와 재가자의 규범으로서 계속 지켜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으로 자자와 포살이 있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율보다는 오히려 계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즉, 율의 조항을 중시하면서도 보다 자각적이고 적극적인 계의 입장에서 율의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가진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자세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계율 이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종의 특색으로 청규을 들 수 있다. 청규는 청정한 규칙이라는 의미로 대중 생활의 규율을 의미한다. 청규는 당나라 백장 회해선사가 총림에서 시행해야할 규칙을 제정하고 그 뒤 각 사찰에서 각기 그 절에서 시행할 규칙을 마련하여 청규라 이르면서 성립된 것이다.
청규는 일반적인 계율과 반하는 조항이 있다. 계율에서는 출가자의 생산행위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백장 청규는 '일일부작 일일불식'이라 하여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청규가 계율과 어긋나는 조항이 있는 것은 힘들여 일하는 것도 수행의 일환으로 선종의 정신이 투영된 것이며 청규의 정신이 여러 대중이 평화롭게 살고 수행자와 불자를 보호하며, 타인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재가 불자가 수지하는 5계,10선계, 보살계는 모두가 이와 같은 계의 정신을 따르고 있다. 주체적인 선택이며 자율적인 것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율의 각 조항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살생을 금하는 것이 가장 큰 계율임에도 더 큰 살생을 막기 위해 승병을 일으킨 것과 같이 계를 지킴과 파함에는 그것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지범개차(持犯開遮)라고 한다. 혹여라도 계율을 지키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제약이 된다면 그 상황을 타개할 때까지 열고,또 닫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계를 지키는 개인 역시 스스로 계율에 얽매이게 된다면 그것은 계를 지키는 것과 어긋나는 것이다. 계를 지키는 것은 스스로가 어떤 자리에서난 성실하고 참된 삶을 살겠다는 것으로 마치 공기를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도에 입각하여 계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교계 일각에서 횡행하는 말처럼 '앉아서 받고 서서 범해도 계만 받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계는 복을 받기 위해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규범을 세우기 위해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은 불교도의 생활윤리, 또는 삶과 수행의 규범으로서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이며, 계를 가벼이 보는 것은 불교도의 삶을 이완시키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계를 수지한 후에는 계율을 삶을 일관하는 좌표이자, 가치관으로 삼아 스스로의 삶을 성실하고 참되게 영위하는 길잡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