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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명상 수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2.14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729
내용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난 기회가 얼마나 드물고 귀중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생애에 불법을 듣고 명상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주어진 기회입니다.
인간의 육체를 갖고 태어난 것을 당연한 일처럼 생각할 지 모르지만, 다음 생에는 인간의 몸을 받을지, 아니면 과거의 어느 생에선가 지은 잘못의 과보로 인간이 아닌 다른 중생의 몸으로 태어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서 두려워하지만, 티베트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음 생에 어떤 중생의 몸으로 태어날 지를 몰라 두려워합니다.
윤회를 철저히 믿는 그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 생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삶이 갖고 있는 위대한 잠재력을 인정한다면, 의미없는 행동들을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태어난 후 20년 동안은 학교공부하고 입시 공부에 쫒겨서 명상하거나 수행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후 다시 20년 동안은 사회생활의 기반을 잡기 위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고 정신적인 세계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돈벌어놓고 나이 들면 편안히 쉬면서 명상하고 수행해야지 하며 미루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은, 늙고 힘든데 무슨 수행이냐고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눈, 귀, 코, 입, 육체의 욕망을 채워주는 일에 전념하다가 지치고 병든 몸으로 이 세상에서 밀려나듯이 떠나가 버립니다.


이런 저런 세속적인 관심사 때문에 핑계를 대고 수행을 미루는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는 죽음과 삶의 무상함에 대해서 명상해야 합니다.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큰스님들을 찾아가서 무엇을 명상할 것인지를 여쭤보면, “무상”에 대해서 명상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이 없고, 항상 변한다는 그 사실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명상하고 싶다는 열망은 어떻게 일으켜야 할까요?
우리는 물질적이거나 감정적인 안정감을 찾는다거나, 감각적 쾌락을 즐긴다거나, 좋은 평판을 얻는다거나 하는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런 것들은 잠시동안은 행복한 느낌을 주지만, 우리가 바라는 깊고 오래 지속되는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지금 나를 행복하게 만족시켰던 것이 잠시 후엔 내게 불만을 일으키고, 나는 더 큰 만족을 기대하며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세속적 쾌락은 직접적이나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집착과 질투와 좌절을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우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세속적 쾌락에서 진정한 충족을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므로, 행복의 진정한 근원은 마음 안에 놓여있는 것이지, 외부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순수하고 평화롭다면 외적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는 행복하지만, 우리 마음이 불순하고 평화롭지 못하다면, 아무리 외적 조건을 변화시켜도 결코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불교를 수행하는 목적은 평화와 행복으로 이끄는 마음의 상태들을 기르고 그렇지 못한 상태들을 근절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짐승들은 음식과 성행위를 즐기고, 거처를 발견하고, 음식을 저장하고, 적들과 싸워 물리치고, 자기 가족을 지킬 수는 있지만,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고 영속적인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귀중한 인간의 삶을 살면서 짐승들도 얻을 수 있는 결과만을 얻는다면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진정한 목적을 완성하고 싶다면, 우리는 불교수행을 실천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출처: 엠파스블로그(바람이 일지 않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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