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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란 무엇인가?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10.2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598
내용
2. 차의 유래

차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왔습니다.
공식적인 문헌상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흥덕왕 조에 보면,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케 했다.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라는 사람이 차씨를 가지고 돌아왔다.
왕은 이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 때부터 흥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때가 아마 서기 829년 경이지요.

물론 그 이전부터 마셔왔다는 간접적인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락,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여
차문화의 전성기인 고려를 거쳐 조선 그리고
지금에 이르른 차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고대 중국을 보면 신농(神農)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중국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오제(三皇五帝 : 삼황은 복희, 신농, 황제를 지칭하고,
오제는 요, 순, 우, 탕, 문무를 지칭합니다.
이들의 시대에는 늘 태평성대였다고 전해집니다)중 하나이죠.
실제 살았는지 알쏭달쏭한 거의 신화적인 존재인데,
중국 고대사 그리고 한의학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 고대사에서는, 신농씨가 동이족이었다고 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의 온갖 풀을 다 먹어보았답니다.
약초를 찾기 위해서죠.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독초를 먹을 수도 있는 법,
하루에 초목 100가지를 씹어서 맛보던 중 72가지의 독에 중독되었을 때
녹차를 씹어 그 독을 해소했다는 것인데...
또 이런 전설도 있지요.
어느 날 그가 조그만 시냇가에서 물을 끓이는데
머리 위에 있던 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져 끓는 물 속에 들어갔다는...
가만 보니 물은 금새 고운 빛깔에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어서
마셔보니 맛이 일품이라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그것이 차잎이었다는...
또 일설에는, 달마대사가 수행하고 있던 중, 자꾸 잠이 와서
눈꺼풀이 무거워져 수행에 방해가 되므로 눈꺼풀을 떼버렸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것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얘기도 전해오지요.

중국 역사의 기록에 차가 나오는 것은 삼국지가 처음이라 합니다
(관우, 유비, 장비가 출연하는 소설 삼국지가 아닙니다.
또 다른 문헌에선 차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으로
기원전 1115년 주공단의 <이아석목편(爾雅釋木篇)>을 들고 있기도 합니다).
서기 242 - 283년 사이의 기록인 이 책에,
"오나라 사람들은 차를 따고 이를 삶는다" 는 내용이 그것.
그러나 중국의 한(漢)민족이 처음 차를 알게된 것은
대략 기원전 135 - 109년 무렵으로 보는 게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본격적으로는 유비가 촉나라를 세운 뒤로 간주하지요.

차나무의 생육에 적합한 기후를 갖춘 지역을 중심으로 차는 널리 퍼졌고
이에 한민족은 차를 급속히 생활 속에 끌어들였습니다.
두통약으로 배탈약으로 민간에서 사용하였고,
당나라 때엔 주로 참선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송나라 때엔 귀족과 왕실의 음료로 이용되었지요.
명나라에 이르러서야 민중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습니다.

중국의 차는 벌써부터 해로와 육로를 통해 몽고,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어기 등
주변국가와 여러 나라에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청나라 때에는, 당시 유럽에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청나라로부터 수입해간 차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홍차가 되었고,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은
홍차문화의 발생지이자 으뜸 소비국으로 되었지요.

19세기 초에 동인도회사는 또한 아샘차를 발견함으로써
인도를 세계 최대의 차 생산국으로 부상시키기도 했습니다
(동인도회사가 실은 사탕수수를 팔아먹기 위해 차를 수입해갔다고도 합니다.
홍차는 쓰고 떫은 맛이 있기 때문에 설탕을 넣어먹어야 하거든요.
결국 홍차를 많이 팔수록 설탕이 많이 팔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숭늉 마시듯 미국인은 연한 블랙커피를 마시고,
중국과 일본인은 차를, 독일인은 맥주, 그리고 영국인은 홍차를 마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녹차가 홍차가 되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가설만이 있는데,
영국의 수요를 대기 위해 마구 딴 차잎이 자연발효된 것을
그대로 가공하여 수출한 것이 영국인의 기호에 맞았다,
차잎이 배에 실려 영국으로 가는 장기간 항해 도중
발효됨으로써 생겨났다는 얘기들이지요.
(녹차를 섭씨 20도 부터 24도 사이의 자연상태에
6시간 이상을 놓아두면 홍차의 성질을 띄게 됩니다).
지금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홍차는 대개 티백 형태인데
고급품의 경우는 잎차 그대로 생산, 유통된다 합니다.

우리나라 차나무의 시원에 대해선
아직 뚜렷한 판단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반도 자생설이 있고 또 중국 전래설,
인도 전래설('가락국 시조 김수로 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시집올 때 가져왔다')이 있지요.
<삼국사기>에 의거해 볼 때,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다고 하니,
이미 우리 고유의 자생 차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그것이 선덕왕 때에 차를 마시는 습속으로 발전해 있었으며,
다만 대렴이 차의 신품종을 중국에서 들여와 심은 후
더욱 성하게 되었을 거라는 설명이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러고보면 시배지(始培地 : 차나무를 처음 기르기 시작한 곳)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라 여겨지는군요.
시배지에 대한 논의는 두 방향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 지역이 시배지냐 아니면
구례 화엄사 지역이 시배지냐 하는 것인데,
현재로선 화개차가 지방 기념물 61호로 지정되어 있고
쌍계사 입구에 차 시배를 기념하는 김대렴공차시배추모비가 서 있습니다.
이 추모비는 81년에 건립되었고, '한국다인회'에서는 이날을 기념해
매년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정하여 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튼 차는 먼저 약용으로 쉬이 이용되었고 이후 시대가 흐름에 따라 수행에, 의식에, 취미에, 생활에 스며들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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