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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를 버리는 방법(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20
첨부파일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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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56
내용

4. 화를 버리는 방법

 

  화의 특성과 그 원인을 알았다 해도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화는

 

저절로 버려지지 않는다.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

 

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견해에만 의지해서 방법을 찾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갈 위험이 있다. 부처님

 

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바른 방법으로 실천해야 화를 효과적으로 버릴

 

수 있다.

 

  화를 화로 대처하지 마라

 

  화를 대하는 바른 자세는 화와 다투지 말고 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화가 일어나면 화가 일어난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아예

 

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화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은 깨달음을 얻은 성자가 아닌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화가 일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미 일어난 화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보

 

다 일어난 화에 대처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미 일어난 화를 실헝하고 거부한다. 예를 들어 '이

 

렇게 화를 내다니 나는 한심한 사람이다', '화는 해로운 마음인데 이렇

 

게 화를 내고 있는 내가 싫다'등으로 다시 화로써 반응한다. 이것은 이

 

미 일어난 화에 대해 다시 화를 내는 것이므로 바른 태도가 아니다. 일

 

어난 화를 싫어하고 거부하면서 화로 대처하게 되면 화가 더욱 커져서

 

점차 압도당하게 된다. 이런 태도는 화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화

 

가 지속되게 하고 더욱 커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화는 이해해야 할 대상이지 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화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해하게 되면 화는 저절로 버려진다. 화가 일어났더라도 화

 

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사람은 화에 압도당하지 않기 때문에 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

 

다. 뿐만 아니라 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혜가 계발되어 화가 다시 일

 

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수도 있다.

 

 

  화를 버리는 방법

 

 

  화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우선 화가 일어났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지금 자기가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습니

 

까? 화를 내고 있는 그 순간을 알아차려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강

 

구할 수 있다. 앞으로 설명할 방법들도 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선행된

 

이후에 가능한 방법들이다.

 

  사람마다 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다 다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

 

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때,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은 원하는물

 

건을 얻지 못했을 때, 주장이 강한 사람은 원하는 물건을 얻지 못했을

 

때, 주장이 강한 사람은 자기 주장에 반대하거나 무시당할 때 화를 낸

 

다. 또한 타인에게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에게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화를 버리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셔서 대상이

 

나 자기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들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하셨다.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익히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

 

로 지혜가 작용해서 어렵지 않게 화를 버릴 수 있다.

 

  첫째, 화의 위험성과 자애의 이익을 반조하는 것이다. 화와 자애는

 

정반대의 심리현상이다. 화는 대상을 싫어하는 심리현상이고 자애는

 

대상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심리현상이다.

 

  부처님께서는 화의 위험성과 자애의 이익을 설하시면서 화를 버리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자애를 계발하라고 말씀하셨다. 앞에서 화의 위험

 

성에 대해서는 설명했으므로 『앙굿따라 니까야』「자애경」에 나오

 

는 자애의 이익에 대해 살펴보겠다.

 

  자애를 많이 계발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이익들이 있다. 먼저 안색이

 

밝아지고 편안해진다. 자애를 많이 닦은 사람은 얼굴이 달덩이처럼 환

 

하고 편안하게 된다. 또한 편안하게 잠들고, 잠잘 때 악몽도 꾸지 않는

 

다. 요즘에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애를 계발하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자애심이 많은 사람은 항상 남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주변 사

 

람들뿐만 아니라 천신이나 동물 등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도 좋아한

 

다. 옛날의 일화를 보면 자애심이 많은 스님에게서는 적대감이 느껴지

 

지 않아서 야생동물들도 달아나지 않고 가까이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면 자애의 계발을 통해 자애선정에 들 수 있고, 그 선정을

 

바타응로 최상의 지혜를 계발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다. 비록 개

 

달음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한다면 자애선정을 닦아

 

서 고귀하고 행복이 가득한 세상인 색계에 태어날 수 있다. 이처럼 화

 

의 위험성과 자애의 이익을 반조함으로써 화를 버릴 수 있다.

 

  둘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상대의 결점보다는 장점을 찾

 

는 것이다. '왜 저 사람이 나한테 화를 낼까, 무슨 마음으로 저러는 것

 

일까' 하고 생각해 봄으로써 자기 입장을 내려 놓고 타인의 마음을 이

 

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화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대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

 

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면 대화의 물꼬가 트일 여지가 있지

 

만 자기 입장만 고수하면 대화 자체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사람을 특정한 부분만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표면적

 

으로 드러난 몇 가지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길쭉하게 생

 

겼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앙굿따라 니까야』「미가살라경」에도 보면 사람을 판단하는 것

 

은 부처님처럼 모든 것에 통달하고 두루 볼 수 있는 존재들만 할 수 있

 

는 일이지 아무나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마음

 

의 각도를 조금 바꿔 상대방을 보면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상대의

 

좋은 점들을 보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좋지 않은 점을 보면 화를 키우

 

게 되지만 좋은 점을 보면 화가 난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다는 것이

 

다.

 

  셋째, 보시를 통해서 화를 버릴 수 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유물을 남에게 보시하거나 남이 보시해 준 것을 잘 받아들임으로써

 

화를 버리는 방법이다. 상대방에게 보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 자애심이 일어나 화가 누그러지고 상대방도 그 보시를 받아들임

 

으로써 화가 가라앉기도 한다.

 

 

 

  보시는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을 길들이고

 

  보시는 모든 이로움을 성취시킨다.

 

  보시와 상냥한 말씨를 통해 보시자는 편안해지고

 

  보시를 받은 사람은 머리를 숙인다

 

 

                                      『청정도론』9장

 

 

  넷째, 부처님이나 성인의 가르침 중에서 좋은 구절을 기억해 두었다

 

가 화가 났을 때 적용해 보는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톱의 비유

 

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양쪽에 날이 달린 톱으로

 

  도둑이나 첩자가 사지를 마디마다 잘라 낸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해 마음을 더럽힌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도 화를 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부처님의 제자로서 내가 겨우 이런 상

 

황에서 화를 내서야 되겠는가'하고 자기를 추스르고 경책하며 화를 다

 

스릴 수 있다. 또는 용서하기 힘든 상황에서 용서하는 사람들의 미담

 

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도 있다.

 

  『법구경』 게송 223번의 이야기에 보면 외도의 집으로 시집을 간 웃

 

따라라는 여인의 일화가 나온다. 웃따라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

 

었지만 외도인 남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가장 아름다운

 

기녀인 시리마를 돈을 주고 고용해서 보름 동안 남편을 보살피게 하고

 

그 기간 동안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을 남편에게 허락받게 된다.

 

 

  어느 날 남편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아내 웃따라가 하녀를 시키지 않

 

고 손수 땀을 흘리며 부처님의 공양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고

 

한심해서 웃었다. 이를 본 기생 시리마는 자신이 고용되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마치 자신이 부인이 된 것처럼 착각하여 엄청난 질투심을

 

일으켰다.

 

  기생 시리마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웃따라를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펄

 

펄 끓고 있는 버터 기름을 그녀에게 끼얹었다. 그러나 웃따라는 '이 여

 

인은 나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그녀의 커다란 친절에 비하며 이

 

세상이 오히려 좁고 범천은 오히려 낮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부처

 

님께 공양 올리고 법문을 들을 기회를 얻었다.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낸

 

다면 버터 기름이 내 몸을 태울 것이고 화를 내지 않는다면 태우지 않

 

을 것이다'라고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자애삼매에 들었다. 이런

 

자애삼매의 힘으로 웃따라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그 때 하인들이 몰려와서 시리마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바닥

 

에 쓰러뜨렸지만 오히려 웃따라는 시리마를 보호해 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 주며 용서해 주었다. 웃따라의 훌륭한 성품에 감동한 기행 시리

 

마는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내거나 상대에게 큰 고

 

통을 주려고 했겠지만 웃따라는 오히려 친절과 자비로 극복해 낸 것이

 

다. 이와 같은 미담들을 기억해 두면 화를 버리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윤회를 반조하는 방법도 있다. 『쌍윳따 니까야』「어머니

 

경」등에 보면 이 세상에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식 등 친족

 

이 아니었던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구들이여, 이 긴 [윤회의] 여정에서 전에 어머니가

 

되지 않았던 중생을 만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윤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중에 과거 전생에 나의 가족

 

이 아니었던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인류만 해도 70

 

억이 넘고 인간계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축생계, 아귀계, 천상계까지

 

헤아리면 중생의 숫자는 엄청나다.

 

  그 수많은 존재들 중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이다. 지금 내가 화내고 있는 상대방이 과거에 나의 사

 

랑스런 아들이었을 수도 있고 고마운 부모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떠올

 

리면 화를 버리는 데 도움이 된다.

 

  여섯째,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애가 남이 행복하기를 바

 

라는 마음이라면 연민은 남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자

 

애와 연민을 합쳐서 자비라고 한다. 어떤 사람과 다투게 되었을 때 '저

 

렇게 화를 내면 저 사람도 무척 괴로울 것이고, 화를 낸 것으로 인해

 

큰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반조한다. 그리고 '저 사람이 고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화가 버려지게 된

 

다.

 

  화가 나는 그 상대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상

 

의 모든 사람들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며, 윤회

 

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연민의 대상이 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곱째, '업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을 이햐하는 것이다. 자업자득

 

이라는 말처럼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화를 냈을 때 맞받아쳐서 함께 화를 낸다면 상대가 악업을 짓는 것에

 

동조해서 나도 악업을 짓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남이 지옥에 간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갈 이유는 없다. 상대가 화를 낼 때 나는 자애로써 대

 

응하면 상대는 악업을 짓지만 나는 선업을 짓는 것이 된다.

 

  『법구경』 게송 125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마음에 때가 없고 오염이 없는

 

  청정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해로운 과보가 그에게 되돌아간다

 

  바람을 거슬러 던진 흙가루를

 

  자신이 뒤집어쓰듯이.

 

  상대가 차려 준 밥상을 내가 받으면 내 것이 되지만 내가 받지 않으

 

면 여전히 밥상을 차려 준 사람의 것이다. 상대가 악처에 떨어질 악업

 

을 지을 때 오히려 연민을 일으키면 나에게도 선업이 될 뿐 아니라 상

 

대의 마음도 누그러뜨려서 더 큰 악업을 짓지 않게 해 주는 효과가 있

 

다. 업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덟째, 화를 일으키게 하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마

 

음에서 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에

 

게 화가 났을 대 화를 나게 한 그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이면 그의 결점

 

은 더 크게 보이고 화는 계속 진행된다. 문제의 원인을 그 사람에게서

 

찾게 되어 화가 더욱 증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를 알아차리게 되면 상대방에게

 

주의를 쏟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고 있는 자기 마음으로 주의를 돌리

 

게 된다. 화가 일어나고 있는 내 마음이 초점이 되는 것이다. 화를 일

 

으키는 대상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 화는 멈추지 않고 커지지만 자신

 

의 마음에 화가 일어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 달리는 자동차에서 브

 

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화가 가라앉게 된다. 뿐만 아니라 화에 대한 관

 

찰을 통해 지혜가 생기게 되어 화를 철저히 버릴 수있는 토대가 마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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