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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삶에 길도우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0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731
내용

내 삶에 길 도우미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찾아 가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은 약간씩 있다.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도를 펴 놓고 사전 길눈을 살피곤 하는데 요즈음 그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지도도 이정표도 아닌 내비게이션이다.

 이 내비게이션 덕분에 길눈이 어두운 사람도 길 찾기에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길을 떠남에 늘 지도가 옆에 있었고 또 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지명은 이정표를 눈여겨봐야 했고 또 그것도차 수월하지 않을 경우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고 또 물어서 목적지에 도착을 한다.

그렇게 몇 차례 길을 나서다 보면 지도의 그림은 대충 내 눈 속과 머릿속에 들어 와 있다. 이제는 훌륭한 내비게이션 길 도우미 덕분에 차안에는 지도도 없다.

또 이정표도 보지 않는다. 그저 내비게이션 목소리 지시대로 달리고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 내비게이션은 정석이다. 지름길이 있어도 입력된 그 길만 가야지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계속 입력된 그 길만 고집을 하는 것이 내비게이션이 주는 특징이다. 아는 길도 내비게이션 지시 따라 가다보면 머릿속은 하얗게 된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때론 수월한 길 안내를 받기도 하지만 때론 엉뚱한 곳으로 갈 때도 있다. 그때는 모르는 길에서는 이리로 가야할지 저리로 가야할지 정말 곤욕을 치른다. 다시 주소를 쳐도 또 그곳으로 반복하여 안내를 해주는 경험을 운전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겪어 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 일이다. 전북에서 도반스님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을 오기위해 대구에서 출발한 일행은 내비게이션에다가 목적지 명칭을 쳤다

. 명칭에는 동명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드시 가고자 하는 곳의 주소를 확인을 해야 하는데 도반스님은 주소는 보지 않고 내가 사는 곳이 충남이니까 당연히 충남에 있는 명칭에다 탐색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10분 이내로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친절한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전북이 아닌 충남에 도착 한 것이었다. 그때야 쳐 놓은 명칭에 주소를 찾게 되었고 다시 입력하고 몇 시간을 걸쳐 목적지에 도착한 사례가 있었다.

 

또 하나는 머릿속에 입력된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인지 할 수 있었다. 그 차안에 탄 한 스님이 목적지가 전북인데 왜 충남으로 가느냐고 운전자하는 스님께 말했지만 운전자 스님은 내비게이션이 이렇게 가라라고 하니 가는 것이라고 그 의견조차 무시하고 달렸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모여 앉아 이런 사례를 두고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기계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너 나 할 것 없이 바보가 되어가는 실체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살아가면서 길 도우미뿐이겠는가, 누가 내 삶의 내비게이션 되어주느냐에 따라 삶의 깊이가 나누어진다. 잘못된 안내와 가르침에 익숙해져 있고 습관화 되어 있는 고정관념을 바로 세우는 길은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이다.

 그 시행착오가 큰 경험으로 승화가 된다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그 속에 머물러 버리며 지름길을 두고 수없이 배회하는 중심이 없는 삶이 된다.

그것이 전부라고 의지하고 믿어 버리고 그리곤 후회하기보다는 스스로 내비게이션이 되어 질문하고 질책하고 도우미가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복 받는 일이 아닌가.

 

(2016년 3월9일자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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