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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굴러다니나
그 굴러가는 곳마다 모두 다 깊고 그윽하다.
흐름을 따르더라도 그 본 성품을 알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心隨萬境轉 轉處悉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심수만경전 전처실능유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
마라나 존자
이 글은 서천 제22조 마라나(摩羅那) 존자의 게송이다. 마라나 존자에게는 학륵나(鶴勒那)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제자에게는 항상 5백 마리의 학이 따라다녔다. 그 까닭을 스승에게 물으니 마라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제4겁 중에 비구가 되었는데 용궁의 공양청(供養請)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대의 제자 5백 명은 공양을 받을 복이 되지 못하여 함께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말하기를 ‘스승님은 항상 설법하시기를 음식에 평등한 사람은 법에 있어서도 평등하다고 하시었으면서 왜 저희들을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야 어떻게 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그대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공양에 나아갔었다. 그 후로 생을 버리고 다음 생을 받을 때마다 여러 나라에 태어났으되 그 5백 제자들은 복이 적고 덕이 없어서 날개가 달린 종족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대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항상 그대를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학록나 존자가 물었다. “무슨 방편을 써야 그들을 해탈케 할 수 있습니까?”
이에 마라나 존자는 “나에게 최상의 법보가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잘 들으라.”고 하시고 곧 위의 게송을 설하시었다. 그랬더니 학의 무리들이 그 법문을 듣고는 모두 슬피 울며 날아갔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경계를 따라 움직이고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추우면 추운 줄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안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도 잘 감지하며 살핀다. 이렇게 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바로 그 곳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다.
그 깊은 내용은 끝을 알 수 없다. 경계를 따라 움직이는 그 자리 그 사실에서 본 성품을 보아 알아야 한다. 본 성품을 보아 아는 것을 견성이라 한다. 그 것에 확신이 서면 기쁜 일도 이미 기쁜 일이 아니다. 슬픈 일도 이미 슬픈 일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다.
그 사람의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다. 오는 대로 잘 비치지만 아무런 미련이 없다. 싫어하는 기색도 없다. 담담하다.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에 빠져들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 학록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마음이었다면, 공양청에 가고 못 가는 데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굴러다니나
그 굴러가는 곳마다 모두 다 깊고 그윽하다.
흐름을 따르더라도 그 본 성품을 알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心隨萬境轉 轉處悉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심수만경전 전처실능유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
마라나 존자
이 글은 서천 제22조 마라나(摩羅那) 존자의 게송이다. 마라나 존자에게는 학륵나(鶴勒那)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제자에게는 항상 5백 마리의 학이 따라다녔다. 그 까닭을 스승에게 물으니 마라나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제4겁 중에 비구가 되었는데 용궁의 공양청(供養請)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대의 제자 5백 명은 공양을 받을 복이 되지 못하여 함께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말하기를 ‘스승님은 항상 설법하시기를 음식에 평등한 사람은 법에 있어서도 평등하다고 하시었으면서 왜 저희들을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야 어떻게 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그대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공양에 나아갔었다. 그 후로 생을 버리고 다음 생을 받을 때마다 여러 나라에 태어났으되 그 5백 제자들은 복이 적고 덕이 없어서 날개가 달린 종족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대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항상 그대를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학록나 존자가 물었다. “무슨 방편을 써야 그들을 해탈케 할 수 있습니까?”
이에 마라나 존자는 “나에게 최상의 법보가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잘 들으라.”고 하시고 곧 위의 게송을 설하시었다. 그랬더니 학의 무리들이 그 법문을 듣고는 모두 슬피 울며 날아갔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경계를 따라 움직이고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추우면 추운 줄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안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도 잘 감지하며 살핀다. 이렇게 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바로 그 곳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다.
그 깊은 내용은 끝을 알 수 없다. 경계를 따라 움직이는 그 자리 그 사실에서 본 성품을 보아 알아야 한다. 본 성품을 보아 아는 것을 견성이라 한다. 그 것에 확신이 서면 기쁜 일도 이미 기쁜 일이 아니다. 슬픈 일도 이미 슬픈 일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다.
그 사람의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다. 오는 대로 잘 비치지만 아무런 미련이 없다. 싫어하는 기색도 없다. 담담하다.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에 빠져들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 학록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마음이었다면, 공양청에 가고 못 가는 데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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