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내용
대승 보살의 삼매
초선 ~ 사선 안에 각각 머무르면
보살이 발광지(發光地)에 머물렀을 때에는 곧 욕심과 악한 일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거친 생각줂覺줃과 세밀한 생각줂觀줃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머문다.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멸하고 안으로 깨끗한 한마음이 되어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는줂無覺無觀줃,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줂定生喜樂줃으로 제2선에 머문다.
기쁨을 여의고, 평등함에 머물러 바른 기억과 바른 앎을 갖추고 몸에 즐거움을 받아, 여러 성인들이 말씀하시는 ‘평등함과 기억을 갖추어 즐거움을 받는다줂能捨有念受樂줃’는 제3선에 머문다.
즐거움을 끊고, 이미 고통도 제거하고, 기쁨과 근심이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평정과 기억을 갖춘 청정한 제4선에 머문다.
모든 색이란 생각을 초월하고줂超一切色想줃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줂滅有對想줃 가지가지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줂不念種種想줃, 허공이 끝없는 데 들어가 허공무변처(虛空無邊處)에 머문다.
일체 허공이 끝없는 데를 초월하면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가 머문다.
일체 식이 끝없는 데를 초월하면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 머뭅니다. 일체 소유함이 없는 데를 초월하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머문다.
그러나 다만 법을 따라서 행할지언정 즐거워 집착하는 일은 없다.
『대방광불화엄경』35권 한글장 46권 192쪽
좌선이란
“사리불이여, 반드시 이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좌선이란 것은 몸과 마음의 (작용이) 삼계(三界)에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멸정(滅定)을 일으키지 않고서도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내는 것, 이것이 좌선입니다. 진리의 법줂道法줃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세속의 일상생활줂凡夫事줃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으로 닫혀 있어서 고요함만을 탐닉하지 않고 밖을 향하여 혼란하지 않는 것이 좌선입니다. 온갖 견해에도 요동하지 않으면서도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서도 열반에 드는 것이 좌선입니다. 만약 이같이 앉을 수 있는 자라면 부처님께서는 인가하실 것입니다.”
『유마힐소설경』상권 한글장 57권 50쪽
보살의 선정
보살이 선정을 닦는 데에도 또 열 가지 법이 있어서 이승과는 차별된다. 첫째는 선정을 닦는 데에는 ‘나’라는 것이 없나니, 여래의 모든 선정을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이요, 둘째는 선정을 닦을 때에는 맛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나니 더러워진 마음을 버려 여의고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모든 신통의 업을 갖추나니 중생의 모든 마음을 알고 행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중생의 마음을 아나니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큰 자비를 실천하나니 모든 중생들의 번뇌의 결(結)을 끊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모든 선삼매(禪三昧)에 들고나는 것을 잘 아나니 삼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항상 자재함을 얻나니 모든 착한 법을 완벽하게 갖추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그 마음이 적멸하나니 이승(二乘)의 모든 선삼매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항상 지혜에 드나니 모든 세간을 벗어나서 열반에 이르기 때문이요, 열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능히 바른 법과 함께 하나니 삼보를 이어 융성하게 하고 그것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정은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같지 않다.
『대보적경』 제경요집 제10권 한글장 528쪽
초선 ~ 사선 안에 각각 머무르면
보살이 발광지(發光地)에 머물렀을 때에는 곧 욕심과 악한 일과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거친 생각줂覺줃과 세밀한 생각줂觀줃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머문다.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멸하고 안으로 깨끗한 한마음이 되어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는줂無覺無觀줃,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줂定生喜樂줃으로 제2선에 머문다.
기쁨을 여의고, 평등함에 머물러 바른 기억과 바른 앎을 갖추고 몸에 즐거움을 받아, 여러 성인들이 말씀하시는 ‘평등함과 기억을 갖추어 즐거움을 받는다줂能捨有念受樂줃’는 제3선에 머문다.
즐거움을 끊고, 이미 고통도 제거하고, 기쁨과 근심이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평정과 기억을 갖춘 청정한 제4선에 머문다.
모든 색이란 생각을 초월하고줂超一切色想줃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줂滅有對想줃 가지가지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줂不念種種想줃, 허공이 끝없는 데 들어가 허공무변처(虛空無邊處)에 머문다.
일체 허공이 끝없는 데를 초월하면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가 머문다.
일체 식이 끝없는 데를 초월하면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 머뭅니다. 일체 소유함이 없는 데를 초월하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머문다.
그러나 다만 법을 따라서 행할지언정 즐거워 집착하는 일은 없다.
『대방광불화엄경』35권 한글장 46권 192쪽
좌선이란
“사리불이여, 반드시 이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좌선이란 것은 몸과 마음의 (작용이) 삼계(三界)에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멸정(滅定)을 일으키지 않고서도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내는 것, 이것이 좌선입니다. 진리의 법줂道法줃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세속의 일상생활줂凡夫事줃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으로 닫혀 있어서 고요함만을 탐닉하지 않고 밖을 향하여 혼란하지 않는 것이 좌선입니다. 온갖 견해에도 요동하지 않으면서도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서도 열반에 드는 것이 좌선입니다. 만약 이같이 앉을 수 있는 자라면 부처님께서는 인가하실 것입니다.”
『유마힐소설경』상권 한글장 57권 50쪽
보살의 선정
보살이 선정을 닦는 데에도 또 열 가지 법이 있어서 이승과는 차별된다. 첫째는 선정을 닦는 데에는 ‘나’라는 것이 없나니, 여래의 모든 선정을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이요, 둘째는 선정을 닦을 때에는 맛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나니 더러워진 마음을 버려 여의고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모든 신통의 업을 갖추나니 중생의 모든 마음을 알고 행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중생의 마음을 아나니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큰 자비를 실천하나니 모든 중생들의 번뇌의 결(結)을 끊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모든 선삼매(禪三昧)에 들고나는 것을 잘 아나니 삼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항상 자재함을 얻나니 모든 착한 법을 완벽하게 갖추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그 마음이 적멸하나니 이승(二乘)의 모든 선삼매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항상 지혜에 드나니 모든 세간을 벗어나서 열반에 이르기 때문이요, 열째는 선정을 닦을 적에 능히 바른 법과 함께 하나니 삼보를 이어 융성하게 하고 그것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정은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같지 않다.
『대보적경』 제경요집 제10권 한글장 528쪽
0
0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