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집
선생님은 있어도 스승님은 없다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것에 머물 수 있지만 스승님은 그 지혜와 지식을 통해 인생의 눈을 넓혀 나를 인도 해주는 사람이다.
출가 이후 내게는 두 분의 스승님이 계신다. 한분은 고인이 되신 은사 스님이시고 또 한분은 생존 해 계시는 운문사 명성회주스님이시다. 나는 최근에 들어서 1년에 한차례 운문사로 참배를 간다. 그 이유는 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성지 순례겸 승보공양일환으로 운문사를 선택한 것이다.
해마다 다른 사찰을 선정해서 갈수도 있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 1년에 한번이라도 스승님을 뵙고자하는 마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운문사 참배 가기 하루 전 도예전시 도록이 나와서 잠시 잠깐 스님을 뵙는 자리에 ‘이런 것 합니다. ’하고 조심스럽게 도록을 드리고 나왔다. 그런데 오픈 날 스님의 법명이 적힌 예쁜 화분 하나가 배달이 되었다.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기쁜 마음에 행사를 마치고 감사의 전화라도 드려야지 하고는 깜박 잊고 있었다
.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사서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전시장으로 가기 위해 운문사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다. 전시를 기억하고 계시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기쁜 일인데 직접 전시를 보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젊은 사람도 길 떠나오기 힘든 거리, 6시간 걸쳐 전시장에 도착하신 것이다.
제자를 만나러 오시는 길 빈손으로 오셔 격려 한 마디만 해주셔도 큰 힘이 되는데 스님께서는 내가 미쳐 챙겨 읽지 못했던 스님에 관한 저서와 운문사 내용이 담긴 사진첩, cd , 청도의 명물인 홍시까지 한보따리 선물로 안겨 주셨다.
찬찬히 여러 차례 반복하여 작품을 보시고 연꽃을 주제로 한 작품에 대하여 연뿌리 구멍이 아홉 개라는 것, 그래서 구품연대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그리고 싶은 연을 내 생각대로 그렸지 연뿌리 구멍이 아홉 개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연을 보고 관찰하고 작품에 까지 연계하는 과정에 내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스승님은 일깨워 주신 것이다. 그리고 연밥이 그려져 있는 연꽃접시 두 점을 손수 구입하시고는 먼 길 휑하니 떠나시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로 글로도 표현되지 않는 뭉글한 가슴을 잠재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날 이였다. 입력이 되어 있지 않는 낯선 번호로 문자 하나가 왔다.
“작품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방장스님께서 전화 하셨던 군요. 부연해서 말할 것은 연꽃의 뿌리는 구멍이 아홉이고 연밥은 구멍이 여러 개입니다. 주위 사람에게 다시 일러주세요.”
내용을 보아 스님께서 사서를 시켜 보낸 문자라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사서가 보낸 것이 아니고 스님께서 스마트폰을 구입하여 직접 문자를 보내신 것 이였다. 문자는 문자로 답을 해야지 전화를 한다고 하셔 나는 전화를 끊고 문자로 답신을 해 드렸다.
60년을 넘게 수행자로 때론 교육자로 때론 학자로, 때론 행정가로 살아오신 분이시기는 하지만 팔순 노령에 남들이면 다 밀쳐버리고 나는 못한다하고 쳐다보지도 않을 것에 스님은 아직도 꼿꼿하게 도전하시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시는 모습, 또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스승님의 나이 때쯤이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스님께서도 언제 어디서나 제자들의 눈을 열어주고 마음을 열어주시는 응병여약 처방, 한해를 마감하는 이쯤에 놓치고 싶지 않는 내 수행의 모델이다.
(2015년12월16일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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