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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0대 초반에 출가를 하여 80년대는 서울에서 중앙승가대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학교의 수업보다도 크고 작은 종단개혁운동이 젊은 학승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두 분의 총무원장이 하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종단운영과 독단적인 권력, 진정한 변혁을 이루고자 했던 젊은 수행자들의 몸부림 이였다.
두 분의 총무원장의 하향으로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자 1994년 대대적인 종단개혁이 이루어졌다. 그 개혁에 몸소 참가 하셨던 분들이 현제 종단의 중요한 위치에서 종단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많은 관행이 바뀌고 많은 변화들이 서서히 절집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사회에는 늘 크고 작은 문제제기와 대립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제기, 갈등, 대립, 이것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위한 성장 통이며 체질개선이다.
또한 공생하는 길이다. 이러한 혼란의 과정 없이 변화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2015년 3월16일, 비구니계도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변화의 몸부림이 일어났다.
그동안 미흡하고 비효율적으로 비구니 회를 운영했을지라도 누구도 반론을 제기 하거나 문제를 삼지 않았다.
왜냐면 첫째는 전국에 있는 대다수 비구니스님들이 비구니회에 대해 관심도 없고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심이 아닌 공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16대 중앙종회 비구니 의원 선출을 통해 문제점이 들어나면서부터 이를 지켜 본 몇몇 의식 있는 젊은 비구니스님들이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 했다.
불합리한 관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분을 바로 잡자는 의미로 결의대회까지 단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코 이것은 분열도 아니며 정치적 쇼도 아니고 권력싸움도 자리다툼도 아니다. 그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으면 된다.
이날 운문사 명성회주스님께서 그 자리에 모인 대중들을 향하여 이런 훈시를 주셨다. ‘용서는 나의 수행이며, 칭찬은 나의기도’라는 말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고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나 자신을 칭찬하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라는 뜻이다.
수행자에게 수행과 기도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이다.
그 일상이 궤도를 벗어낫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문제를 만든 사람이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의 중요성까지 강조하셨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6000명 비구니 모두에게 주는 죽비 같은 말씀이었다.
예전에 통하던 법이 안 통하는 시대가 되었음 개정하고 고쳐가야 한다. 이것이 소통이며 화해의 미덕이며 수행이고 기도이고 수행자의 모습이다.
든든한 제도권안의 법을 가진 힘이 있다 할지라도 대중 모두가 염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그 일을 우선으로 삼아 풀어 가야 하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덕목이다.
불교의 청정성과 수행력의 담보로 세상을 보듬어 가야 할 일들이 많다. 비구니스님들까지 ‘왜 그러느냐’는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 내지 말자.
투표로 당선된 소임이라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바로 그 유종의 미가 정치적인 쇼, 권력의 싸움, 자리다툼,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하루 빨리 ‘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의 일상으로 돌아갔음 한다.
(2015년 4월25일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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