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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고 한 노자의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물이 만물에 평등하게 그 품을 내어주는 생명의 어머니라면, 차(茶)는 선(禪)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라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근간을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신령한 나무가 바로 차이다. 이런 차를 달여 그 물을 깊이 음미하다 보면 정신을 가다듬게 되어 번뇌를 벗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선의 세계이다. 오늘날까지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후기 선승 초의(草衣,1786~1866)는 이러한 차의 맛을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했고,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성품에 사특함이 없다.”고 그 덕을 노래했다. 그가 다도(茶道), 특히 우리 차의 빼어남에 대하여 시의 한 형식인 ‘송(頌)’으로 지은 책이 바로 유명한 『동다송(東茶頌)』이다..
발 형태의 찻잔으로 말차에 쓰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은로탕정(銀爐湯鼎)은 은으로 만든 화로와 찻물을 끊이는 세발솥이 있었으며, 은화(銀荷)는 은으로 만든 연잎 형상을 한 작은 쟁반이고, 탕호(湯壺)는 더운 물을 담는 그릇, 단칠조(丹漆組)는 붉은 칠을 한 적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차의 빼어남을 노래한 명저
초의는 1828년 그의 나이 43세에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서 청나라의 모문환이 엮은 백과 사전겪인 『만보전서』중 ‘다경채요(茶經採要)’를 읽고 정리해 『다신전(茶神傳)』을 지었다. 그 후 수자인 수홍의 청에 의해 1830년 일지암에서 다시 정서를 하기도 한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 초의라는 이름은 조선의 다계에서 유명을 얻었다. 이 『다신전』에는 찻잎 따는 법, 차 만드는 법, 차의 품질 식별 법, 차 보관법 차 마시는 법 등이 소상히 들어 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837년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정조의 부마)가 진도 부사 변지하로 하여금 차에 관해 깊이 알고 싶다는 뜻을 초의에게 전했다. 이에 초의는 승려답게 불교 경전의 문체를 빌어서 게송 형식의 『동다송』을 지었다.『다신전』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차를 소재로 만든 유일한 책으로 꼽히는 『동다송』은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석오(石梧) 윤치영은 “『동다송』한 편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과 더불어 우열을 다투지만 조용히 가라앉아 담담하게 세속을 떠나 피안에 이르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다.”고 평하였다. 『동다송』은 ‘우리나라 차에 대한 칭송’이라는 뜻 그대로 우리 차의 우수성에 대해 찬미한 31편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나 초의가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것은 17수이다. 초의는 이 책에서 먼저 차의 전설과 그 효능에 대하여 아름답게 읊었다. 이어 생산지에 따른 차 이름과 품질, 차 만드는 일, 물에 대한 평, 차 끓이는 법, 차 마시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노래했는데 하나하나의 송마다 중국 고서 등에서 인용한 주를 달아 고증학적인 보충 설명을 했다. 초의는 이 책에서 우리 차가 색깔, 향기, 맛, 약효에 있어서 중국의 차에 뒤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차 달이기에서는 실학의 선승다운 세밀하고 실용적인 필력을 발휘했다. “차 달이기의 요지는 먼저 불 살피기이다. 화로불이 빨갛게 되면 표주박 모양의 탕관을 비로소 얹고, 부채질을 빠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 끓는 소리를 기다리며 점점 더욱 세게 부채질을 하는데 이것이 뭉근한 불과 강한 불을 살피는 문무지후이다. 문이 지나치면 물의 성미가 유약해지고 유약해지면 물이 차를 굴복시키고, 무가 지나치면 불길이 세어지고 세어지면 차가 물을 제압한다. 모두 중화가 부족하니 다가의 요지가 아니다.”차 넣기의 차례에 계절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 역시 찻잎과 물의 상태, 계절의 상관관계를 생각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또한 그가 추구하던 세계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차가 그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동다송』의 맨 끝에는 이러한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대한 노래가 실려 있다.
“대숲과 솔 물결 소리 다 서늘하니/ 맑고 차가운 기운 뼈에 슴배어 속마음 일 깨운다./흰 구름 밝은 달만 두 손님으로/ 깨달음 얻으려 하는 이는 이 이상 좋을 수 없지.”
차 속에 ‘참 삶’이 있다.
우리나라의 차 마시기는 가야, 신라 때부터 궁중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원효를 비롯한 고승 대덕과 귀족들이 즐겨왔지만 중국과 일본처럼 다례로서 정형화되진 못했다. 그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차가 상류층만의 전유물이었던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물맛이 이웃 나라에 비해 월등했던(?) 데에 있다. 질 좋은 물을 그냥 벌컥벌컥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물을 정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차 문화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상류 사회의 전유물이었던 우리의 차는 한때 서민들에게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했다. 고려 때는 귀족들의 차 마시기로 말미암아 차를 재배하고 생산하는 천민들이 혹사당하였는데 고려조 이규보의 시에는 백성들이 시달리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에는 승려 계급이 무너지면서 서민들이 차 밭에 불을 지르거나 파 없애는 일도 있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차 밭 등을 크게 훼손함으로써 우리 차 문화의 수난에 일조하였다. 이렇듯 수난으로 점철되어 피폐해진 차 문화를 부흥한 것이 바로 다성 초의였다.15세 때 남평 운흥사에 들어가 사문의 길을 걷게 된 초의 선사는 당대 최고의지식인인 다산 정약용에게 배우고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며 승려로서는 드물게 신지식인으로 통했다. 특히 청대 문헌 고증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국의 다서를 섭렵해 차 문화에 관한 한 우리나라 최고 봉우리를 차지한다. 그의 『동다송』은 중국의 『다경』, 일본의 『끽다양생』과 함께 다(茶)에 관한 불후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차를 제대로 잘 마심은 삶을 재대로 잘 사는 것이라고 했던 초의. 그의 사유는 조선 후기 불교의 특징인 선(禪) 일변도의 분위기와 큰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그는 만법이 둘이 아니라는 ‘제법불이(諸法不二)’를 강조했다. 그가 일상 차를 하면서 선정(禪定)에 드는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에 들었던 것은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녕, 차는 곧 깨달음일지어니
시간의 노예가 되어 ‘더 빨리’ 라는 구호를 외치며 치열하게 달려가던 현대인들이 ‘느림의 가치’를 찾으면서 우리의 차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차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호흡을 가다듬으려 기다리고 차의 향과 색, 맛과 기운을 서서히 느끼는 사이 사람들은 조금씩 욕심을 버리고 맑아진 마음을 느끼게 된다. 고즈넉이 생각에 잠겨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우리는 순간순간 생의 진실을 깨닫는다. 한국의 차 문화를 세속의 일상사에서 지고한 다선삼매의 세계로까지 승화시킨 초의. 바쁘게 사는 현대인이 다선의 경지에까지 이르진 못하더라도 한 순간이나마 ‘정녕, 차는 깨달음’이라는 진실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체험인가. 물은 차의 몸(體)이고, 차는 물의 신(神)이다.
출처 - 물, 자연 그리고 사람 2005년 3월호 (김의정)
발 형태의 찻잔으로 말차에 쓰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은로탕정(銀爐湯鼎)은 은으로 만든 화로와 찻물을 끊이는 세발솥이 있었으며, 은화(銀荷)는 은으로 만든 연잎 형상을 한 작은 쟁반이고, 탕호(湯壺)는 더운 물을 담는 그릇, 단칠조(丹漆組)는 붉은 칠을 한 적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차의 빼어남을 노래한 명저
초의는 1828년 그의 나이 43세에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서 청나라의 모문환이 엮은 백과 사전겪인 『만보전서』중 ‘다경채요(茶經採要)’를 읽고 정리해 『다신전(茶神傳)』을 지었다. 그 후 수자인 수홍의 청에 의해 1830년 일지암에서 다시 정서를 하기도 한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 초의라는 이름은 조선의 다계에서 유명을 얻었다. 이 『다신전』에는 찻잎 따는 법, 차 만드는 법, 차의 품질 식별 법, 차 보관법 차 마시는 법 등이 소상히 들어 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837년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정조의 부마)가 진도 부사 변지하로 하여금 차에 관해 깊이 알고 싶다는 뜻을 초의에게 전했다. 이에 초의는 승려답게 불교 경전의 문체를 빌어서 게송 형식의 『동다송』을 지었다.『다신전』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차를 소재로 만든 유일한 책으로 꼽히는 『동다송』은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석오(石梧) 윤치영은 “『동다송』한 편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과 더불어 우열을 다투지만 조용히 가라앉아 담담하게 세속을 떠나 피안에 이르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다.”고 평하였다. 『동다송』은 ‘우리나라 차에 대한 칭송’이라는 뜻 그대로 우리 차의 우수성에 대해 찬미한 31편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나 초의가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것은 17수이다. 초의는 이 책에서 먼저 차의 전설과 그 효능에 대하여 아름답게 읊었다. 이어 생산지에 따른 차 이름과 품질, 차 만드는 일, 물에 대한 평, 차 끓이는 법, 차 마시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노래했는데 하나하나의 송마다 중국 고서 등에서 인용한 주를 달아 고증학적인 보충 설명을 했다. 초의는 이 책에서 우리 차가 색깔, 향기, 맛, 약효에 있어서 중국의 차에 뒤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차 달이기에서는 실학의 선승다운 세밀하고 실용적인 필력을 발휘했다. “차 달이기의 요지는 먼저 불 살피기이다. 화로불이 빨갛게 되면 표주박 모양의 탕관을 비로소 얹고, 부채질을 빠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 끓는 소리를 기다리며 점점 더욱 세게 부채질을 하는데 이것이 뭉근한 불과 강한 불을 살피는 문무지후이다. 문이 지나치면 물의 성미가 유약해지고 유약해지면 물이 차를 굴복시키고, 무가 지나치면 불길이 세어지고 세어지면 차가 물을 제압한다. 모두 중화가 부족하니 다가의 요지가 아니다.”차 넣기의 차례에 계절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 역시 찻잎과 물의 상태, 계절의 상관관계를 생각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또한 그가 추구하던 세계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차가 그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동다송』의 맨 끝에는 이러한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대한 노래가 실려 있다.
“대숲과 솔 물결 소리 다 서늘하니/ 맑고 차가운 기운 뼈에 슴배어 속마음 일 깨운다./흰 구름 밝은 달만 두 손님으로/ 깨달음 얻으려 하는 이는 이 이상 좋을 수 없지.”
차 속에 ‘참 삶’이 있다.
우리나라의 차 마시기는 가야, 신라 때부터 궁중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원효를 비롯한 고승 대덕과 귀족들이 즐겨왔지만 중국과 일본처럼 다례로서 정형화되진 못했다. 그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차가 상류층만의 전유물이었던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물맛이 이웃 나라에 비해 월등했던(?) 데에 있다. 질 좋은 물을 그냥 벌컥벌컥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물을 정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차 문화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상류 사회의 전유물이었던 우리의 차는 한때 서민들에게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했다. 고려 때는 귀족들의 차 마시기로 말미암아 차를 재배하고 생산하는 천민들이 혹사당하였는데 고려조 이규보의 시에는 백성들이 시달리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조에는 승려 계급이 무너지면서 서민들이 차 밭에 불을 지르거나 파 없애는 일도 있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차 밭 등을 크게 훼손함으로써 우리 차 문화의 수난에 일조하였다. 이렇듯 수난으로 점철되어 피폐해진 차 문화를 부흥한 것이 바로 다성 초의였다.15세 때 남평 운흥사에 들어가 사문의 길을 걷게 된 초의 선사는 당대 최고의지식인인 다산 정약용에게 배우고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며 승려로서는 드물게 신지식인으로 통했다. 특히 청대 문헌 고증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국의 다서를 섭렵해 차 문화에 관한 한 우리나라 최고 봉우리를 차지한다. 그의 『동다송』은 중국의 『다경』, 일본의 『끽다양생』과 함께 다(茶)에 관한 불후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차를 제대로 잘 마심은 삶을 재대로 잘 사는 것이라고 했던 초의. 그의 사유는 조선 후기 불교의 특징인 선(禪) 일변도의 분위기와 큰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그는 만법이 둘이 아니라는 ‘제법불이(諸法不二)’를 강조했다. 그가 일상 차를 하면서 선정(禪定)에 드는 다선삼매(茶禪三昧)의 경지에 들었던 것은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녕, 차는 곧 깨달음일지어니
시간의 노예가 되어 ‘더 빨리’ 라는 구호를 외치며 치열하게 달려가던 현대인들이 ‘느림의 가치’를 찾으면서 우리의 차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차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호흡을 가다듬으려 기다리고 차의 향과 색, 맛과 기운을 서서히 느끼는 사이 사람들은 조금씩 욕심을 버리고 맑아진 마음을 느끼게 된다. 고즈넉이 생각에 잠겨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우리는 순간순간 생의 진실을 깨닫는다. 한국의 차 문화를 세속의 일상사에서 지고한 다선삼매의 세계로까지 승화시킨 초의. 바쁘게 사는 현대인이 다선의 경지에까지 이르진 못하더라도 한 순간이나마 ‘정녕, 차는 깨달음’이라는 진실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체험인가. 물은 차의 몸(體)이고, 차는 물의 신(神)이다.
출처 - 물, 자연 그리고 사람 2005년 3월호 (김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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