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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환급과 무주상보시
연말 연초가 되면 사찰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 받으려는 신도들 발걸음이 분주하다. 보시자가 보시 한 만큼 받아 가면 별 문제가 없는데 자식이나 손자 손녀 이름으로 발급 해달라는 분들이 더러 있다. 보시 금액 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불법(不法)이다. 그래서 설명을 한다. ‘연말정산 기부금 공제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종교단체 기부금은 본인 근로소득금액의 10%를 환급 받을 수 있다’ 등 아는 상식을 동원해 이해시킨다. 그러면 서운해 한다. 마음이 상해 절에 나오지 않는 신도도 있다.
그래도 우리 절은 심각하지 않은데 주변 스님들에게 들어보면 다양한 사연이 있다. 불교대학등록금을 기부금으로 볼 것인가 여부를 놓고 고심한 사찰도 있었다. 기부금은 부처님께 올리는 헌공의 의미를 띤다. 등록금은 강의를 듣기 위한 목적을 갖기 때문에 대가성이 있다. 기부금 성격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마 해당 사찰 주지스님이 원칙대로 대처한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사찰에서 발급 받은 동료가 있었나 보다. 계속 조르기에 결국 발급을 했는데 기부의 순수한 의미가 변질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회계법 세무 용어 사전에는 기부금을 이렇게 정의한다. ‘민법상으로 재산의 출손(出損), 즉 무상증여를 의미하며 타인을 원조할 목적으로 하등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재산을 무상으로 주는 것’. 사전 정의 처럼 기부는 원조와 무대가(無代價)가 핵심이다. 물론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신도들의 마음은 이해 한다.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부처님 전에 올린 돈은 소득세가 제하고 남은 소득의 일부이다. 그래서 정부는 비영리단체의 기부금에 대하여 면세조치를 한다. 기부자는 공제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한다.그리고 아직 기부 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세금 혜택을 많이 주는 것이 기부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지금처럼 기도금이 세금 혜택 대상으로 고착화되고 환급을 당연시 하는 문화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부는 세속 법이든 불법이든 아무런 대가성이 없어야 한다. 특히 사찰에 내는 모든 보시금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이다. 공양을 놓고 세금 혜택 운운하면 내는 사람 기분도 개운치 않고 공양의 참 뜻도 살리지 못한다. 불교는 사회적 기부를 ‘보시’라고 한다. 보시 중에도 아낌없이 주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주상 보시’가 진정한 보시라고 여긴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지만 무주상 보시는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보시가 주는 가장 큰 ‘혜택’은 기쁨이다. 모든 사람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훨씬 더 기쁘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공덕이다. 그러나 지금 연말 연초마다 되풀이되는 ‘기부금 영수증 발급’은 보시의 본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기부금이 세금 환급 대상으로 정착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한다. 환급 제도가 있기 전부터 기도금을 내고 공양을 올렸다. 어느 누구도 그 중 일부를 되돌려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처님 전에 엎드려 기도하고 공양 올리는 그 본연의 마음을 되찾았으면 한다. 아울러 소외된 이웃을 돕는 다양한 제2의 기부문화가 확산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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