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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 불상의 마음] 구원불久遠佛과 삼신불三身佛 (법신, 보신, 화신)

작성자
세원사
작성일
2020.05.16
첨부파일0
추천수
2
조회수
796
내용


구원불久遠佛과 삼신불三身佛


석가모니불, 그 분 또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나투셨기에 80세의 생애를 마감하고 열반涅槃의 세계로 떠나갔다.


남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그분께서 법(진리)과 스스로에 의지한 각각의 삶을 살아나가라 했을지라도 그러한 가르침을 설해준


인격의 사라짐은 너무나 허전했을 것이다.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자비로운 예지의 소유자가 갑자기 사라진 빈자리, 그 허무와 그리움의 공백을 어떻게 매울 수 있겠는가.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본래의 고향,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久遠佛, 永遠佛의 신앙으로 승화된다.


바로 석가모니불을 아득한 옛날부터 깨달음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그러면 2,600여 년 전 인도 땅에 태어나 깨달음을 성취하고 80세의 일기로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불은 누구인가?


『법화경』에 따르면 그 대답은 이렇다.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영원한 님으로 머물다가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의미와 가치, 그 실천행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해


방편으로 그렇게 오셨다 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여래의 출현을 하나의 커다란 인연으로 설한다.


석가모니불이 2,600여 년 전 이 땅에 출현한 이유는 중생들에게 위없는 지혜를 열어 보여 주어서


중생이 부처님의 세계로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바로 깨달음의 세계를 개開, 시示, 오惡, 입入하기 위한 방편으로 석가모니불은 이 땅에 오셨을 뿐,


그분의 진짜 몸은 항상 이 세계에 머물러 설법 교화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 영원한 부처님을 '법신法身' 이라 한다.


석가모니불께서 깨달은 것도 법이고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도 법이다.


그렇다면 법이란 무엇인가?


매년 어김없이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사시사철의 변화라든가 생겼다가 머물고 이윽고 사라지는 만상의 움직임이 법이다.


인생의 생로병사도 이 법에 따른 것이요,  꽃이 피고 지는 것도 이 법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이치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치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나 여타의 생명, 그 밖의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법이다.


법은 진리이고 그 진리가 이 세상에 드러난 모습이다.


그러나 법의 참다운 모습은 우리들의 분별적인 생각을 초월해 있다.



경전에서는 그 법을 구체적으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緣起法으로 제시한다.


연기법의 핵심은 바로 세상을 관계적으로 조망하는 것이다.


그 관계적 조망에서는 고정된 관점이나 분별의식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연기법은 대승불교에 들어와 '공空'으로 설명된다.


공이란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은 단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虛無를 말하는가?


아니다. 공은 고착하여 굳어진 것에 대한 부정이요 항상 새로워지려는 자유로운 생명의 흐름에 대한 큰 긍정이다.


공은 집착을 부정하며 철저하게 자기를 비운다.


그러한 공의 자기부정과 자기 비움은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집착이 없기에 걸림이 없다.


결박과 속박에서 벗어나 한없이 자유롭다.


어떤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으며 분별적 지성으로 포착할 수 없다.


그러기에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가득 차 있다.


텅 빈 충만이기도 하다.


공으로 대립과 분별, 편견과 억측, 집착과 갈등을 잠재우고 거기에 따라 세상을 조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불자의 길이다.


그 공으로서의 법을 인격화하여 표명한 것이 '법신法身'이다.


  법은 태고부터 이 세상에 두루 편재해 있어 줄거나 늘어나지 않은 채로 움직인다.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소멸되지도 않는다.


그러한 모습으로 영원히 우주에 머문다.


따라서 법신도 영원히 머물면서 이 세상에 움직인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영원불로서 석가모니불은 이렇게 해서 우리 곁에 다시 오게 된다.


그렇다면 법신은 인간이 사유를 통해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한가?


아니면 본래 존재하는 영원한 님인가?


물론 후자가 답이다.


법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으며 석가모니불은 단지 그것을 발견하여 보여 주었던 것이다.


진리는 영원히 존재한다. 단 그것을 인격화해 보았을 때 법신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신불로부터 수행의 결과 복락을 수용하여 부처님이 되신 분이 '보신불報身佛'이며 


중생들의 원을 따라 몸을 나투시는 부처님이 '화신불化身佛'이다.


  그렇다면 보신불이란 어떠한 부처님을 말하는가?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이 땅에 출현한 부처님이 보신불이요,


아득한 옛날부터 끝없는 수행과 공덕을 쌓은 결과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기 때문에 보신불이라고 한다.


또한 보신불은 그러한 공덕의 결과 아주 복된 몸을 받아서 수용한다.


공덕으로 장엄한 몸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상적인 인물이 갖춘다는 32상 80종호를 받아서 누리게 된 것이다.


32상 80종호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불상에 드러나 있는 특징을 말한다.


  보신불에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본행本行이다. 본행이란 구도자(보살)의 온갖 구도적 행위를 말한다.


보신불은 붓다가 되기 전 구도자로 있을 때 대자비심을 일으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겠노라 결심하여 여러 가지 바라밀행을 실천하였다.


둘째는 대원大願, 혹은 본원本願이다.  


구도자는 중생이 여러 가지 고통과 죄악에서 헤매는 광경을 보고 반드시 그들을 구제하겠노라는 원을 세운 결과 그 과보로서 붓다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중생 구제의 일을 벌인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노라고 48가지의 커다란 대원을 세워 마침내 성불한 아미타부처님이나


병든 자를 고치고자 12가지 대원을 일으켜 성불한 약사여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셋째는 대방편大方便이다. 참된 구도자는 뭇 중생과 자신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에 중생에 대한 차별심이 없다.


그래서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고자 그들에게 맞는 갖가지 방편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이와 같은 대방편의 지혜로부터 불가사의한 작용이 저절로 나타나 어느 곳에나 미치게 된다.


  다음 화신불을 보자.


화신불의 본래 바탕도 법신불이다.


이 분 역시 대자비심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부처님을 가리킨다.


단 보신불과 차이가 있다면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역사 속에서 특정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 삶의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분은 법신불이 다양한 모습으로 이 땅에 몸을 드러내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다.


우리들의 기도에 감응하는 부처님이다.


흔히 우리가 자비의 화신이니 평화의 화신이니 하면서 어떠어떠한 화신이라는 말을 하는데,


바로 그렇게 자비나 평화를 안겨다 주는 여러 부처님을 모두 화신이라 한다.


석가모니불도 2,600여년 전 인도라는 역사의 장에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했으므로 화신불이요,


앞으로 이 역사의 세계에 태어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도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삼신三身으로 섬기고 비로전에 모신다.


노사나불을 공덕으로 장엄한 부처님이기에 보신불이라 하지만, 왜 비로자가불에서 '비'가 하나가 생략된 노사나불이라 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추측하건대 노사나불은 소리와 형상이 없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부처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사나불은 부처님으로서 32상 80종호를 갖춘 비로자나불의 또 다른 이름이자 그 구체적인 인격적 현현으로 보아도 무방하기에


다만 그렇게 이름을 살짝 달리 불렀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매월 음력 28일은 노사나재일로 기리고 있다.


노사나 부처님은 비로자나 부처님이 형상을 통해 드러난 인격적 나투심인 까닭에 우리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를 기리며


그 진리의 세계를 공덕으로 원만한 노사나 부처님을 통해 간구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의 경우, 본 모습은 영워한 부처님이기 때문에 법신불이요,


대자비로서 중생을 구제함과 아울러 수행의 결과 붓다가 되었기에 보신불이며,


이 역사의 세계에서 인격을 갖추고 중생을 구제해 나갔기 때문에 화신불이다.


결국 석가모니불은 법신불인 '공空'으로부터 자기를 비우는 자비행의 실천으로 형상을 갖추고 이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구제하게 된 것이다.


법신불로서 석가모니가 공이라면 화신불이나 보신불로서의 석가모니불은 자비인 것이다.


석가모니불은 삼신불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지만 삼신불의 어느 하나로 특화해서 부를 때는 2,600년 전 인도 대륙에서


중생들을 구제하였기 때문에 화신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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